네덜란드 NXP반도체가 미국 프리스케일반도체를 인수합병(M&A)한다. NXP가 프리스케일을 인수하면 매출액 기준 반도체 소자 업계 7위로 껑충 뛰어오르게 된다. 특히 자동차 반도체 분야에선 일본 르네사스와 독일 인피니언을 누르고 1위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양사의 주력 제품군은 거의 겹치지 않고, 일부 겹치는 무선주파수(RF) 분야의 경우 NXP 소속 사업부를 매각할 방침이기 때문에 주요 각국의 합병 승인도 큰 무리없이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글 한주엽 기자 powerusr@insightsemicon.com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또 하나의 ‘빅딜’이 성사됐다. 네덜란드 NXP반도체는 지난 3월 2일(미국시각) 미국 프리스케일반도체를 M&A한다고 밝혔다. 인수가는 무려 118억달러. 프리스케일의 부채를 포함하면 인수 금액은 최대 167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NXP는 설명했다. 우리돈 약 18조원에 이르는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프리스케일을 사 오는 것이다. NXP는 프리스케일을 인수함으로써 시가총액 400억달러의 거대 시스템반도체 기업으로 재탄생한다. 연간 매출액은 100억달러를 웃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수를 완료한 이후 비용 절감 시너지는 연간 약 5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NXP는 밝혔다. 릭 클레머 NXP 최고경영자(CEO)는 공식 발표 자료를 통해 “이번 합병으로 NXP는 고성능 혼합 신호 반도체 시장에서 선두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NXP는 올 하반기까지 이번 인수 작업이 완료될 것이라고 전했다.
단숨에 세계 반도체 업계 7위로 도약
시장조사업체 IHS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NXP의 지난해 연간 매출은 54억5700만달러, 프리스케일은 45억6000만달러였다. 매출액 순위는 NXP가 14위, 프리스케일이 17위다. 양사 매출의 합은 100억달러를 상회한다. 이 같은 매출 규모는 인텔, 삼성전자, 퀄컴, 마이크론, SK하이닉스,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이은 7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메모리 분야를 제외한 순수 시스템반도체 업계 순위로 따지면 4위로 뛰어오르게 된다.
NXP가 프리스케일 M&A 발표 직후 투자자들에게 공개한 분석 자료에 따르면 추후 출범할 합병 법인은 자동차 반도체 및 범용 마이크로컨트롤러(MCU) 시장에서 각각 선두 자리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두 부문 모두 자동차 전장화 트렌드 및 사물인터넷(IoT) 시장의 개화로 고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실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NXP와 프리스케일의 매출 성장률은 시장 평균을 밑돌았으나 자동차 및 범용 MCU 시장 성장에 힘입어 2013년과 2014년의 매출 성장률은 시장 평균을 웃돌았다. 지난해에는 양사 모두 전년 대비 두 자릿수의 높은 매출 성장세를 보였다.
양사 합병은 일본 르네사스와 독일 인피니언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NXP와 프리스케일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에서 르네사스 및 인피니언의 뒤를 이어 3위권 그룹에 이름을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인수 후에는 선두 업체인 르네사스와 동등 수준 혹은 소폭 상회하는 매출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올해 초 주당 80달러대를 유지해오던 NXP의 나스닥 주가는 3월 2일 합병 발표 이후 한 때 100달러를 돌파하기도 했다. 11일 현재 90달러대 NXP의 주가는 90달러대 후반대를 꾸준히 유지해오고 있다. 시장에선 이번 M&A를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다.
겹치는 제품군 거의 없어, NXP RF 사업부문은 매각
NXP와 프리스케일이 발을 담그고 있는 시장은 엇비슷하지만 양사의 방대한 라인업 가운데 중복 제품군은 거의 없다. 이는 시장에서 이번 딜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된 요인이다. NXP의 사업 부문은 ▲보안 MCU, 저전력 무선주파수(RF) 및 RFID 태깅 제품 등을 다루는 보안 식별 솔루션(Secure Identification Solutions, SIS) ▲모바일 업무 및 판매시점관리(POS) 솔루션 등 전자결제 관련 제품군을 다루는 보안 연결 디바이스(Secure Connected Device, SCD) ▲유무선 인터페이스 장치와 발광다이오드(LED) 드라이버 및 교류(AC)/직류(DC) 파워 컨트롤러 등을 다루는 보안 인터페이스 & 파워(Secure Interface & Power, SI&P) ▲인포테인먼트, 차량 내 통신 등 자동차 반도체 제품군을 취급하는 오토모티브(Automotive) ▲범용 로직 및 개별(discretes) 반도체, 저전력 파워 모스펫(MOSFET) 등을 다루는 표준 제품군(Standard Products)으로 나뉜다. 지난해 연간 매출 비중은 SIS 18%, SCD 19%, SI&P 19%, 오토모티브 21%, 표준 제품군 23%다.
프리스케일의 사업 부문은 ▲자동차를 제외한 산업, 스마트에너지, 헬스케어, 커넥티비티 등 범용 MCU ▲통신 인프라 장비에 탑재되는 프로세서를 다루는 디지털 네트워킹 ▲자동차용 프로세서를 다루는 오토모티브 MCU ▲각종 아날로그 칩과 센서를 포함하고 있는 아날로그 & 센서 ▲RF ▲기타 제품군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연간 매출 비중은 MCU 20%, 디지털 네트워킹 22%, 오토모티브 MCU 25%, 아날로그 & 센서 17%, RF 12%, 기타 제품군 2%였다.
클레머 NXP CEO는 최근 EE타임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프리스케일 인수는 장기적 관점에서 이뤄졌다”며 “이번 합병을 계기로 IoT 시장을 선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일하게 중복되는 RF 사업에 대해 “기존 NXP의 사업 부문을 매각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다. 클레머 CEO는 “NXP와 비교하면 프리스케일의 RF 사업부의 성장세가 더 크기 때문에 그쪽을 유지할 것”이라며 “NXP의 RF 사업 부문을 유지하면 압도적 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지만 주요 각국, 특히 중국 반독점 규제 당국의 합병 승인을 얻어내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자동차 반도체 분야서 상당한 시너지
클레머 CEO에 따르면 NXP는 프리스케일을 인수하기 전 IDT와 CSR도 인수 후보로 꼽고 있었다. 그러나 내부 조사 결과 IDT의 경우 중복 사업이 많았고 CSR은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전체의 4분의 1 밖에 되지 않아 매력도가 떨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클레머 CEO는 “NXP는 처음부터 프리스케일에 관심이 많았다”며 “그러나 양사 모두 각각 부채를 안고 있어 합병 협상이 다소 지연돼 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렉 로우 CEO가 이끄는 프리스케일은 최근 매출이 확대되고 수익성 역시 개선되는 추세를 보인 덕에 인수를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클레머 CEO는 센서, 프로세싱, 연결성, 보안 제품군을 완벽하게 갖춘 합병 법인이 IoT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선 독보적 위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NXP는 현재 LIN(Local Interconnect Network), CAN(Controller Area Network), 플렉스레이(FlexRay) 차량 네트워킹용 칩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자동도난 방지 및 카 라디오 시장에서도 1위, 오디오 앰프 시장에선 2위의 자리를 점하고 있다. NXP가 진입하지 않은 빈자리는 프리스케일의 제품군으로 완벽하게 메꿀 수 있다. 프리스케일은 운전자 정보 시스템, 안전 및 섀시, 차량 자동화, 동력전달장치(파워트레인) 및 엔진 관리, 본체 및 보안, 레이더 및 비전 시스템, 차량 네트워킹 분야에서 다양한 반도체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다. 다양한 센서 제품군도 출하 중이다.
클레머 CEO는 “프리스케일의 자동차용 시스템온칩(SoC)을 NXP 자동차 라디오 플랫폼에 탑재하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당장 패키지 공급 사업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다. 양사 합병은 자동차 반도체 시장의 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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