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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by MindOpener 2016. 1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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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아래는 나무위키에서 내용을 퍼온 것입니다. 

개요[편집]  
"우리나라 권력 서열이 어떻게 되는 줄 아느냐. 최순실 씨가 1위, 정 씨가 2위이며 박근혜 대통령은 3위에 불과하다."
- 박관천 前 경정[1] 기사 아카이브
"도대체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누구이관대, 나라를 불신과 불통의 아수라장이 되게 해놓고 정작 당사자는 말 한마디 없는가? 아니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것인가?"
- 김용태 새누리당 국회의원 #[2]
2016년 10월 현재 국내포털 실검 해시태그[3], 시국선언[4], 여론조사[5], 촛불집회[6] 등, 전국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과 하야 요구로 뒤덮게 만들며 박근혜정부 최대의 위기를 몰고 오고 있는 최악의 국기문란사건[7] 최순실 게이트의 당사자

최순실은 부친인 사이비교주[8] 최태민[9]의 대를 이어 박근혜 대통령과의 혈육이상의 친분관계[10]를 이용하여 축재[11]를 하고 대통령을 정신적으로 통제하여 국정에 개입하고 농단해 민주국가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정부의 비선 실세로 지목받고 있는 사람으로, 2016년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자발적으로(?) 수백 억 원의 돈을 걷어 만든 미르재단과 K스포츠 재단의 설립에 깊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12]

2016년 9월 처음 언론에 의혹이 터져나온 후 10월까지 약 1달 만에 이 사람이 만들어낸 각종 의혹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최경희 총장이 사임하고, 대통령이 직접 엄정 수사를 언급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문화, 교육, 스포츠, 연예 분야에 이르기까지 이런 막대한 의혹을 낳은 장본인이거늘, 언론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탓에 얼굴이 제대로 드러난 사진조차 구하기 힘들었고, 인터뷰를 시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그나마 의혹이 터진지 한참 뒤인 10월 27일에야 최초 인터뷰 기사가 나왔다.

2. 생애[편집]

1956년에 최태민과 임선이[13] 사이에서 최태민의 5녀로 태어났다(즉, 박근혜 대통령보다 4살 연하). 본명은 최순실이지만, 2014년 2월경 최서원으로 개명했다고 한다.[14][15] 역시 출생연도 값 한다[16]

최순실의 부친 최태민은 1975~1994년에 육영수의 혼령과 통한다고 주장하면서 무려 20년 동안이나 박근혜와 매우 가깝게 지내왔던 수수께끼의 인물이다. 목사가 아니라 무당 그리고리 라스푸틴일 수도 예지몽을 꾸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데 물론 믿거나 말거나다.[17]

최태민은 6명의 아내로부터 9명의 자녀를 뒀다. 최태민은 그 중 다섯째인 최순실을 특히 총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상호의 사실은>은 ‘태자마마 최태민이 최순실을 총애한 이유’에 대해 “아버지의 현몽(現夢)[18], 꿈을 통한 예지력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댓글 성지순례행 “박근혜에게 최순실이 꿈 이야기 하는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고 증언한 사람들도 있다. #

1975년 단국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청강생으로 입학등록했다. 학부 수업에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고 하며, 수료증을 받고 졸업 후 같은 과 대학원을 수료하였다. 그러나 수료는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학위를 취득한 게 아니라면 고졸인 셈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위치한 퍼시픽스테이츠대학교에서 4년만에 석사학위를, 2년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며 이를 기반으로 유치원 원장을 역임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취재결과 미국에서 유아교육 관련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고 하는 기간 동안 한국에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 참고로 미국 퍼시픽스테이츠대학교는 경영학 관련 학위과정만 있는 대학교로 박사학위도 경영학박사 (Doctorate of Business Administration) 과정만 있다. # 이와 관련하여 현재 학위 위조 의혹을 받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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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6월 10일 박근혜 새마음 봉사단 총재가 축사를 한 '제1회 새마음 제전'에서 당시 대학원생으로 이 날 행사를 주최한 ‘새마음 대학생 총 연합회’의 회장[19]이었던 최순실이 그날 ’새마음 제전’의 개회 선언을 한 일이 당시 언론에 보도되었다. 하지만 그때에는 그녀가 최태민의 딸이라는 사실까지 보도되지는 않았다. 여기서 당시 박근혜와 경호원의 제지도 없이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20] 인터넷 뉴스 '뉴스타파'의 심층 보도


동영상을 보면, 마치 연예인처럼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손을 흔드는 박근혜 총재의 옆을 최순실이 그림자처럼 수행하고 있다. 당시 박근혜 총재의 나이는 불과 27세, 최순실의 나이는 23세였다.

1979년 박정희가 피살되고 이듬해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박근혜가 고작 6억 먹고 떨어져야 했던[21] 인생 최대의 시련기를 보낼 때도 최순실은 충실하게 박근혜의 옆을 지켰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박근혜는 1984년 6월 좋은 환경을 버리고 성북동 집을 판 후, 삼성동에 있던 최태민 집 앞으로 이사했다. 박근혜와 최태민의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최순실의 집이 있었으며, 이 주변은 최태민, 최순실, 박근혜의 부동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22]

시사저널이 입수한 문건에 의하면, 1982년 김영호(최순실보다 연하)와 결혼해서 1983년 김○대를 낳았고 1985년 이혼했다고 한다. 아들에 대한 친권은 김영호가 갖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23] 그런데, 같은 잡지의 취재에 의하면, 공교롭게도 김○대는 박근혜정부 출범 후 청와대 총무구매팀에서 근무했다고. 문제는 김○대가 공무원도 아니고, 정치권 출신도 아니고, 일반 직장 경력이 화려하지도 않은 사람이었다는 것.

그러다가 1986년 3월에는 육영재단 부설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무렵 최태민과 최순실이 육영재단 사업에 개입해 전횡을 일삼았고, 이로 인해 140여 명의 육영재단 직원들은 최태민의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직당했다. # 당시 최태민의 사촌인 김창완이 어린이회관 관장에 임명됐고, 육영재단 이사진에 영남투자금융 비리의 핵심인 김정욱이 임명됐으며, 새마음병원 사무국장, 명덕재단 사무국장 등에도 최태민의 친인척 및 하수인이 임명되었다. 이로 인해 1990년 육영재단 분규 때 직원들이 최태민과 최순실의 전횡을 비판하는 플래카드를 걸고 데모를 한 일이 있었다.[24] 이에 대해 2007년 6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는 이렇게 주장했다. #

"최태민의 로열패밀리는 육영재단을 재산증식의 장으로 이용했고 박 전 대표는 육영재단 이사장이었지만 아무런 실권도 행사하지 못하고 최태민과 그의 딸의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측근에 의해 작은 재단 하나도 소신껏 꾸려가지 못하고 농락당해 세상의 비웃음거리가 된 사람이 어떻게 한 나라 지도자가 되고 험난한 21세기 글로벌시대를 넘어갈 수 있겠나?"
1994년 아버지 최태민이 사망하였을 때 아버지에게서 수백 억 원의 재산을 물려받았다는 소문이 있다. 실제로 최순실의 자매들은 최태민에게서 거의 그 정도의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참고로 최태민과 최순실은 박근혜를 만나기 전까지 아무 자산이 없던 사람들이었다. 실제로 박근혜를 만나기 이전에는 최태민과 그의 가족들은 단칸방을 전전하며 살만큼 가난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근혜를 만난 이후 최태민은 순식간에 수천 억 원대 준재벌급 부동산 자산가로 변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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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더 중요한 사실은 최태민 사망 이후 최순실이 최태민의 후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2016년 10월 14일자 한겨레TV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최태민은 교주였는데, 최순실이 현몽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최태민의 후계자가 되었다"고 말했다.[25][26]

1990년대 초중반에는 유치원(압구정동 초이유치원)을 운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당시 최순실 명의의 상당한 재산이 박근혜의 차명 재산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최순실은 유치원 사업이 잘 되어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고 해명한 바 있는데, 실제로도 사업이 잘 되기는 하였다고 한다. 당연한 거 아닌가? 뒤에 누가 있는데. 그건 그렇고 유치원 하나 잘 운영해서 반포, 강남 등에 수백 억 대의 부동산을 갖게 된 것이 말이 되나?

여성잡지 <우먼센스> 1994년 8월호에 가명으로 인터뷰가 실린 적이 있다. 인터뷰 내용을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지는 미상이지만(최태민에 대한 의혹을 부인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하여간 본인 말로는 박근혜와 처음 알게 된 것은 1976년경이었다고 한다. #

1995년 정윤회[27]와 재혼했다. # 그리고 1996년, 딸 정유라[28]를 낳았다는 것이 공식 기록이다. 

1998년 오랜 은둔의 시기를 마친 박근혜가 정치계에 입문했을 때에도, 박근혜의 곁에 그림자로서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 정윤회를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밀어넣은 것이다. 2008년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른바 ‘문고리 3인방’ 이재만, 정호성, 안봉근 비서 역시 그때 정윤회에 의해 발탁된 인물들이었다.

2006년에 박근혜가 서울시장 선거 유세 현장에서 피습을 당했을 때 박근혜를 간호했다고 한다. 2007년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한나라당 경선에서도, 박근혜 캠프를 비선에서 지휘한 것은 최순실의 남편인 정윤회였다는 얘기 역시 떠돌아 다녔다.

대략 2006년 경에 강남의 한 유흥업소에서 고영태를 만난 것으로 추측된다. 고영태는 전직 펜싱 국가대표 선수로 한때는 호스트 생활을 한 적도 있었고, # 마약사범으로 형벌을 받은 적도 있는 자였다. # 20세 연하인 호빠 출신 고영태와 서로 ‘반말’을 하는 사이로서 매우 친하게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관계가 어떠한 관계인지는 위키니트들의 상상에 맡긴다. 고영태와 가까워진 후, 고영태가 만든 가방 브랜드 빌로밀로를 박근혜에게 소개하였는지, 박근혜는 2013년 초 당선인 신분으로 빌로밀로 가방을 자주 들고 다녔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선거운동원으로 등록하지도 않고 사실상 비선 선거캠프의 본부장 노릇을 한 것으로 보인다. jtbc의 보도에 따르면, 후에 청와대 행정관이 되는 김한수의 태블릿에 담긴 박근혜의 대선 유세 연설문들이 최순실 또는 정유라에 의해 최종수정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 이밖에 대선 TV토론이나 홍보영상 신문광고까지 모두 최순실에게 전달됐고 이후 수정한 흔적도 여러 번 나타난다. 법적 논란도 예상되는 부분. # 어쨌든 박근혜의 대통령 당선에 큰 공로를 세웠다.

떠도는 루머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도록 한 것도 최순실이라고 한다. 새누리를 한자어로 바꾸면 신천지인데, 신천지는 최태민이 만든 영세교의 분파로서 최태민의 제자가 만든 사이비종교의 이름이라는 것. 우연히도 미르재단의 미르와 K스포츠재단의 K를 합치면 미륵인데, 미륵은 최태민의 자칭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얘기는 어디까지나 루머로서 믿거나 말거나... 관련 글

박근혜의 당선 이후인 2014년에 정윤회와 이혼하였다. 개명 직후에 최순실이 정윤회를 상대로 가사조정신청을 했고 조정이 성립되어 이혼했다고 하며, 신청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매우 특이한 것은, '결혼 기간 중에 있었던 일들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않기로 하고, 이혼한 뒤 서로 비난하지 않는다'라는 조정 조항이 들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 까닭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윤회는 황당하게도 '남들도 이혼할 때는 다 그렇게 한다고 들었다.'라는 해명(?)을 한 바 있다. 위장 이혼 의혹을 제기하는 이도 있었으나, 주진우에 의하면 정윤회와 사이가 나빴던 것은 사실이고, 딸도 부친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다고 한다. # 팟캐스트 <김용민 브리핑>에서 주진우가 한 말에 따르면, 최순실과 정윤회는 ‘프라이팬과 식칼을 들고 싸울 정도’로 사이가 나빴다고 한다. #

2014년 2월 조응천 청와대 비서관이 최순실 관련 내사를 벌이기 시작하면서, 잠시 위기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14년 4월 15일 저녁에 조응천이 청와대의 누군가로부터 "내일부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라는 통보를 받는 것으로 최순실 관련 내사는 종결되었다. 바로 다음 날인 2014년 4월 16일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였는데, 당일 7시간 동안 박근혜의 행적이 묘연하여 당시에 여러 가지 의문을 자아냈다.

2014년 여름에는 딸 정유라가 현역 고등학생 신분으로 삐끼 출신 신주평의 아이를 갖는 등 파란이 많았다. 낙태를 하라고 했으나 정유라가 말을 듣지 않는 등 맘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 어쨌든 임산부 정유라를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승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었고, 이화여자대학교 체육학과에도 입학시키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2015년 여름에 미르재단을 출범시켰다. 미르재단 이사장으로는 자기 동네 단골 마사지 업소 사장인 정동춘을 선임하였다. 물욕과 성욕, 권력욕 등등... 최순실은 욕망 덩어리 그 자체? 당시 고영태와의 관계는 아예 사업을 같이 하는 관계로까지 발전하였다. 최순실의 개명 후 이름인 최서원과 고영태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고.원.기획’이라는 회사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고영태가 나중에 JTBC와의 인터뷰에서 핵심 정보는 다 실토하였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의 진짜 핵심 측근은 고영태라고 한다. #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시가 30억 원짜리 117평 주상복합 아파트에[29] 거주하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해당 주상복합 아파트 지하주차장에는 최순실 소유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차량과 벤츠 S클래스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면 보기 힘들다는 애스턴 마틴 라피드 S도 보인다. #

2016년 10월 31일 서울 중앙지검 로비에 명품인 프** 신발한쪽을 남겨둔채 저녁식사로는 인근식당에서 배달한 곰탕을 거의 다 먹었다고 뉴스에 나왔다.

3. 논란[편집]

3.1. 최순실 게이트[편집]

너무 길어서 아예 따로 작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최순실 게이트 문서 참조.

청와대와 조선일보 사이의 공방에서 시작된 이 사건은 당초 미르재단 등은 일해재단처럼 대기업에 대한 청와대의 삥뜯기(?) 정도 였으나 차은택, 고영태 등의 인물들이 속속들여 밝혀지면서 더 블루 K, 이화여대 등 그 파장이 점차 확대되어 청와대 핵심 기밀 문서가 최순실에게 미리 보고되고 최순실이 수정까지 했다는 등 관련된 폭로들이 화수분처럼 매일매일 나오고 있다. 관련된 취재는 JTBC, TV조선 같은 종편이나 한겨레, 조선일보 정도만이 했으나, 박근혜의 "엄정 처벌" 발언 이후 지상파 방송사들도 취재에 나섰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스캔들의 장본인인데도, 현재까지 기자들이 어디 사는지도 못 알아냈고 연락처도 구하지 못해서 본인의 입장을 인터뷰할 수조차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 해당 기사에 따르면 이런저런 불명의 카더라는 많이 들어오지만, 최순실 측이 미리 뜬소문을 퍼뜨리는 함정을 파 놓고 언론사들이 오보를 냈을 때 반격할 가능성이 있어서 가능한 한 조심해서 취재 중이라고 한다.

해외 도피 및 자금 세탁 중이 아닌가하는 야권의 의혹이 제기되었다. 일단 현재는 독일에 딸과 외손자와 함께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30]

인터넷에서는 '순siri'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디씨에 최순실 갤러리까지 생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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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hoto.jtbc.joins.com/news/2016/10/26/201610262130348348.jpg
http://imgnews.naver.net/image/005/2016/10/25/201610251935_61120011023066_1_99_20161025193606.jpg

2010년대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최순실이 9월 독일로 출국 전에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마지막으로 찍힌 사진이다.

2012년 18대 대선을 앞두고 박근혜 대선 후보의 선거 유세문, 당선 소감문, 대선 TV토론 자료 및 홍보 동영상 등에 깊이 개입하였다. 이런 사실은 2016년 10월 24일 JTBC의 뉴스룸 보도가 있기 전 까지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유세문 보도, TV 토론 보도)

2013년 박근혜가 대통령 취임식 당시 입었던 한복도, 최순실이 직접 주문해서 지어줬다고 한다. # 박 대통령이 2013년 7월 저도에서 휴가를 보내는 모습을 찍은 사진에서 박 대통령이 입고 있던 옷은, 공교롭게도 최순실이 전에 입고 다니던 옷과 똑같이 생겼다는 보도도 있었다. 2014년 우병우의 청와대 입성도 최순실이 관여했다고 한다. #

사실 2016년 10월 이전까지 청와대의 비선 실세로 주목 받은 것은 최순실이 아니라 전 남편인 정윤회였지만, 2016년 10월 이후에는 야권에서도 '진짜 실세는 최순실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대통령과의 관계가 얼마나 좋으냐에 따라 권력의 강도가 결정된다는 이야기가 떠도는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휘두르는 실세 중의 실세였다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 심지어 청와대 안팎에 "문고리 3인방은 생살이고 최순실은 오장육부다. 생살은 피가 나도 도려낼 순 있지만, 오장육부에는 목숨이 달려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

일각에서는 최순실이 청와대 비밀 통로를 통해 청와대를 본인 집처럼 자주 드나들고 있으며최순실 게이트, 이는 청와대 경비를 서는 직원들도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이야기를 한다.# 참고로 박근혜는 불필요한 구설수를 피하기 위함이라는 이유로, 여동생 박근령과 남동생 박지만 EG 회장조차도 청와대에 드나들지 못하게 하는 걸로 알려져 있다. 



최순실 사건의 흐름

3.1.1. 연설문 첨삭[편집]

2016년 10월 19일, 고영태가 이렇게 증언했다.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고쳐 써주는 걸 즐겨 했다고. 또한 국무회의 내용도(!!!) 박근혜보다 먼저 받아 보았다고.

이에 대해 2016년 10월 21일 청와대 이원종 비서실장은 "정상적인 사람이면 믿을 수 있겠나.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16년 10월 24일 JTBC 취재팀은 최순실의 컴퓨터 파일을 입수해서[31] 분석했고, 최순실이 대통령 연설문을 받아봤다는 사실을 결국 확인해냈다. 물론 최순실이 연설문 44개를 파일 형태로 받은 시점은, 모두 대통령이 연설을 하기 이전이었다. #

2014년 3월 28일의 드레스덴 선언도 최순실의 작품이라는 게 드러났다. 최순실 pc의 파일을 보면 누군가 붉은 글씨로 수정한 흔적이 나오는데, 그 유명한 '통일은 대박'이란 워딩 역시 최순실의 손을 거친 것으로 추측된다. # 그런데 이렇게 별 맥락도 의미도 없이 최순실이 걍 집어 넣었을 것으로 보이는 ‘통일은 대박’이란 말 한마디에, 한동안 우리나라 관료들과 경제인들은 이게 뭔말인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며 ‘통일대박 대잔치’ ‘통일대박 대학생 논문공모전’ ‘통일대박 심포지엄’ 따위의 난리법석을 떨어야 했으니...

사실 박근혜의 연설문은 유난히 구어체의 비속한 표현이 많고, 주술관계가 어긋난 문장이 허다했으며, 사실관계도 많이 틀리는 편이었다. 원래 대통령 연설문은 전문 비서관이 따로 관리하여 문법과 사실관계가 잘 맞아야 하는데, 유독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만 그 모양 그 꼴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 까닭을 모두가 알고 싶어 했는데, 최종 오케이교정을 최순실이 했다고 하니 그제서야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근데 어차피 최순실이 첨삭 안 했어도 그 모양 그 꼴이었을 거라는 게 함정

이 부분 역시 최순실 게이트 참고.

3.1.2. 행사용 의상 담당 업체 선정[편집]

TV조선이 10월 28일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식 행사에 나갈때 입는 의상까지 청와대 내에서 공정한 경매를 거치지 않고 자신과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의상실에 맡겼다고 한다. 이것만해도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한 큰 문제지만 그나마 담당이된 '강남 샘플링'은 직원 수준이 개판이라 의상실에서 치킨을 먹고 흡연을 하며 술판을 벌이는 직원들이 가득했으며, 기름 묻은 손으로 의상을 작업했다고 한다. #ⓐ

3.1.3. 육영수 유품 밀거래 관련 의혹[편집]

2016년 10월 24일, 육영수가 생전 즐겨 두르고 다니던 '흰여우 목도리'를 최순실이 암시장에서 팔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

육영수 유품이면 유족인 3남매(박근혜 본인,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 박지만 회장)가 차지했을 텐데, 최순실이 이것을 팔았다. 그리고 최순실은 육영수와 직접 엮이지 않는다. 저 보도문에선 최순실이 소유하고 있다가 매각하였다는 것은, 박씨 일가가 최순실한테 합법적으로 증여하지 않았다면, 최순실이 육영재단에 있으면서 육영수 관련 유품을 불법 절도/장물거래 한 것이라는 추론이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 

3.1.4. 대한항공 인사 개입[편집]

2016년 10월 22일에는 국제공항에서 장관급 의전을 받았고 대한항공 인사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실제로 최순실은 자신에게 프랑크푸르트 국제공항 이용할 때마다 편의를 봐준 대한항공 지점 부장을 박근혜에게 "매우 훌륭한 사람"이라고 칭찬해줬는데,[32] 그 부장은 최순실에게 보통 장관급에게 하는 의전을 대접해줬다고 한다. 해외까지 알려졌던 그녀의 힘. 

이후, 청와대에서 "윗분의 뜻"이라며 그를 "특별히 배려"해달라고 2차례 연락이 왔고, 대한항공 측은 그 부장을 대한항공 직원들 사이에서 가장 선호되는 국내 제주지점으로 인사발령 냈다.

3.1.5. 정부정책 결정을 위한 비선 모임[편집]

2016년 10월 25일에는 한겨레신문에서 최순실이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30cm 두께의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는 특종보도를 했다. #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증언에 따르면, 최순실은 거의 매일 청와대 정호성 비서관으로부터 30cm 두께 대통령 보고자료[33]를 받았고, 자신의 논현동 사무실에서 각계 전문가와 ‘비선모임’을 가졌으며, 국정 전반을 논의했다고 한다.[34]

이 전 총장은 비선 모임의 참석자와 관련해 “적을 때는 2명, 많을 때는 5명까지 모였다. 나도 몇 번 참여한 적이 있다”며 “모임에 오는 사람은 회의 성격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지만 차은택씨는 거의 항상 있었고 고영태씨도 자주 참석했다”고 말했다.그는 “최순실 씨는 모임에서 별다른 설명 없이 이 자료를 던져주고 읽어보게 하고는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렸다”며 “최씨의 말을 듣고 우리가 사업 계획서를 작성해 올리면 그게 나중에 토씨 하나 바뀌지 않고 그대로 청와대 문건이 돼 거꾸로 우리한테 전달됐다”고 말했다. 비선 모임의 논의 주제와 관련해서는 “한 10%는 미르, 케이스포츠 재단과 관련한 일이지만 나머지 90%는 개성공단 폐쇄 등 정부 정책과 관련된 게 대부분으로 최순실씨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관심사항’이라고 표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모임에서는 인사 문제도 논의됐는데 장관을 만들고 안 만들고가 결정됐다”고 밝혔다.

덧붙여서 이성한은 “이런 얘기는 통념을 무너뜨리는 건데, 사실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다. 대통령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없다. 최씨한테 다 물어보고 승인이 나야 가능한 거라고 보면 된다. 청와대의 문고리 3인방도 사실 다들 최씨의 심부름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3.1.6. 청와대 비서관들을 직접 지휘했다는 의혹[편집]

2016년 10월 25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2014년 11월 3일 정오쯤 청와대 3급 행정관 윤전추와 청와대 2부속실 행정관 이영선이 청와대와 최순실 씨 측을 오가며 심부름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애초에 박근혜와 절친한 사이조차 아니라던 최순실에게# 무려 청와대 행정관이 시중을 들고 있다니, 그것도 박근혜의 추후 해명에 따르자면 보좌 체계 완비 이후엔 국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그녀에게# 2014년 11월까지 잔심부름을 하고 있었다니, 국민들 입장에서는 정말 충격적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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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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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인 정유라와 찍은 사진.


2016년 10월 26일 TV조선 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은 이미 2014년 4월 29일에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서 만든 체육특기자 입시 관련 문건을 입수하였다.[35] 보고서가 만들어진 당일 청와대의 누군가가 최순실에게 관련 문건을 통째로 팩스 송신한 것이다. #

물론 이것만으로 이화여대의 체육특기자 선발에 청와대의 협조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최소한 최순실이 정유라의 체육특기자 입시를 미리부터 준비했으며, 그와 관련하여 청와대의 도움을 상당히 얻었다는 정황이 포착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 문건을 입수한 때로부터 6개월 뒤인 2014년 10월 30일, 정유라는 이화여대에 승마특기생으로 합격하였다.

자세한 내용은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문서를 참조.

[1] 2014년까지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해당 발언은 2015년 1월에 동아일보에서 보도한 내용으로,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과 관련한 검찰 수사 당시 수사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여기서 동아일보는 박 前 경정의 말을 '황당한 권력 서열 강의' 정도로 치부하였지만,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사실로 드러났다.
[2] 대통령을 감싸도는 여당 새누리당 소속 국회의원이 이랬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하다. 물론 김용태 의원은 친박계와 많이 다투었으며, 유승민 의원과 더불어 대표적인 비박의 강경파이긴 하지만 같은 당원 입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고 말았다. 이것은 여당도 옹호가 힘들다는 뜻이다.
[3] 관련기사1. 포털 검색어 휩쓴 '하야·탄핵'…분노한 대한민국 관련기사2. "박근혜 화법은 베이비토크" 다시 주목받는 전여옥 어록 관련기사3. "국민 우롱한 녹화사과"…'하야?탄핵' 여론 들끓어
[4] 관련기사1. "국민이 인정 안하면 박대통령 물러나야" 확산되는 대학생 시국선언 관련기사2. ‘최순실 사건’ 진상 규명 촉구 시국선언 잇따라
[5] [여론] 박 대통령 지지도 17.5%
[6] '진보·보수, 청년·노인 한자리에'…대통령 퇴진 촛불집회 전방위 확산 왜?
[7] 국정원과 국군사이버 사령부의 여론조작 사건과 함께 박근혜 정부 양대 국기문란사건이다.
[8] '비선 실세' 최순실 아버지 최태민 씨가 창시한'영생교'는 어떤 종교?
[9] 2007년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본국으로 보낸 보고서에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벽히 지배했다(had complete control)' 는 내용이 있다 주한美대사관, 2007년 본국에 보낸 보고서에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 朴후보를 지배" 이 보고서와 그간의 정황 김종필과 김현철의 최태민 사생아발언등으로 2007년 경선 청문회에서 사생아가 있느냐는 핵직구질문이 던져질 정도로 박근혜와 내연관계라는 의혹도 있어왔다
[10] 박근혜의 친동생인 박지만이 '피보다 진한 물도 있더라'는 2014년 정윤회 게이트때 한 말이 유명하다. 여기서 물은 최순실 "박지만도 '최순실 통하라'는 말 듣고 살았다" 박지만 “누나, 최순실-정윤회 얘기만 나오면 최면 걸려”
[11] 미르·K재단으로 이름만 바꿨을 뿐 기업에 헌금강요, 후견인 자처 등 부친인 최태민의 수법 그대로라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 40년 전 최태민 수법 그대로
[12] 예를 들어 전경련이 수백억 원의 돈을 걷어서 만든 K스포츠 재단의 이사장으로 갑자기 선임된 정동춘은, 최순실이 평소 단골로 드나들던 스포츠 마사지 센터의 원장이었다고 한다. 현재 K스포츠 재단은 개점 휴업 상태였다가 결국 해산됐는데, 재단 사무실과 박근혜 사저 사이의 거리는 불과 800m라고 한다.
[13] 최태민의 5번째 아내이다. 나중에 박근혜의 정치 입문에 많은 힘을 썼고, 사위 정윤회에게 박근혜의 비서실장으로 들어가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관련 기사
[14] 일부 언론에서는 "최서연"으로 개명했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나, 그 후에 모든 언론이 다 '최서원'으로 보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15] 단국대학교 청강생 시절에는 '최필녀'라는 이름을 썼다고 보도되었다.
[16] 최순실이 태어난 1956년의 갑자가 바로 병신(...)이다. 참고로 최순실과 동갑내기인 사람이 바로 서세원이다(...). 물론 둘은 서로 아무 관련도 없지만. 똑같은 년놈들이서 참 잘한다
[17] 김형욱 중앙정보부장도 회고록에서 최태민의 ‘예지력’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최태민이 청와대로 보낸 편지에는 “육영수 여사가 꿈에 나타나 ‘내 딸 근혜가 우매해 아무것도 모르니 가서 그를 도우라고 했다’고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
[18] 죽은 사람이나 신령 따위가 꿈에 나타나는 것
[19]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은 ‘새마음 갖기 운동본부’를 창설한 뒤 스스로 본부장을 맡았고, 박근혜는 ‘새마음 봉사단’ 총재를, 최순실은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20] 여담으로 박근혜 바로 옆에 앉아있던 남자는 다름 아닌 이명박 당시 현대건설 사장이다. 이 두 사람이 훗날 대권을 위해 양보 없는 싸움을 벌였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흥미로운 장면이다.
[21] 현재 물가와 혼동해서는 안 된다. 70년대 6억이다! 그러고 보니 이건 왜 해명을 안 해? 70년대 당시 부동산 최고로 꼽히는 은마아파트 31평 30채 가량을 구매할수 있는 거액이었다.
[22] 2007년 6월 17일 당시 한나라당 당원이었던 김해호가 주장한 내용이다. #
[23] 정윤회의 아버지와의 인터뷰에서 '전남편과 사이에 다른 자식이 있다'#라고 하여 딸 정유라가 실은 재혼 전에 태어난 것 아니었느냐는 억측이 있었다.
[24] 최태민이 1987년 재단직원들에게 반감을 산 이유는 당시 <어깨동무>, <꿈나라> 등 어린이 잡지 편집에 딸 최순실을 관여시키는 등 육영이 목적인 어린이 회관을 수익 사업체로 전환시키려 한 데 있었다.어쨌든 이 일로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태우는 육영재단에 경찰 2개 중대를 파견하는 등 육영재단 ‘정상화’를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박근혜는 육영재단 이사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25] 주진우 시사인 기자는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최순실 곁을 봐준다는 무속인을 2명 만났다”며 “정윤회 씨를 봐주는 무속인도 있었고 최순실 딸을 봐주는 점쟁이도 있었다”고 밝혔다. 주 기자는 “최태민 씨는 교주였다”며 “최순실 씨가 현몽을 물려받았다고 해서 (최태민의) 후계자가 된 것으로 듣고 있다”고 말했다. #
[26] CBS 표준FM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집중 인터뷰 "최순실 쫓는 '악마 기자' 주진우" - 주진우 기자 (시사IN), 유튜브링크
[27] 훗날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다
[28] 2015년 6월 12일경 '정유연'에서 '정유라'로 개명함.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대회 진행 문서에 나오는 그 정유연이다. 단체 마장마술에서 금메달을 땄다. 아시안게임 전의 국가대표들 인터뷰 때 방송에 잠깐 나온 바도 있다. #
[29] 청담동 '피엔폴루스'이다.
[30] 2016년 10월 30일 입국했다. 검찰 소환을 기다리는 중이다.
[31] 최순실이 국외로 튀면서 증거인멸한 쓰레기더미가 있었는데, jtbc 서복현 기자가 거기서 컴퓨터를 찾아냈다고 한다. 이건 완전 퓰리처상 급.
[32] 공교롭게도 그 이전에는 자기 딸이 라이벌한테 국내 경기에서 지고 나서 심판들을 겁박했다는 사실을 파헤치던 문체부 국장을 "참 나쁜 사람"이라고 일러바쳐서(...) 해당 국장이 좌천된 적도 있다.
[33] 그 자료는 주로 청와대 수석들이 대통령한테 보고한 것들이었다고 한다.
[34] 이런 진술은 최씨와 가까웠던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 9월 7일부터 9월 25일까지 모두 4차례에 걸쳐 16시간 동안 진행한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말한 내용이다.
[35] 이 문건은 2016년 10월 최순실의 측근 사무실에서 발견되었다. 문건 상단을 보면, 2014년 4월 29일 밤 9시 4분에 팩스로 보내진 기록이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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